[경북] 경주 인왕동 사지
경주 인왕동 사지는 인용사의 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경주 인왕동 사지는 인용사의 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용사는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인 김인문(629~694)의 안녕을 비는 절이다.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이후 당나라는 신라까지 정벌하려 하면서 당에 머물고 있던 김인문을 감옥에 가두었다. 신라 사람들은 그의…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 발견된 기와 가마터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이 모두 9기의 가마터를 확인하고 그중 1기를 발굴조사하였다. 조사한 가마는 전체 길이 10.5m, 너비 1.72m로,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해 만든 굴가마이다. 출토된 기와편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여 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청도군 중앙부 화양읍의 부채꼴 땅 위에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게 쌓은 석축 읍성으로, 고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웠다. 고려 때 흙으로 쌓은 성을 1590년(선조 23) 왕명에 따라 돌로 고쳐 쌓았으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길이 동문과 서문을 지나던 교통의 요지였다. 둘레는 약…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이다.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1칸× 2칸)과 대청(3칸× 2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짜임새는 오량(五樑)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쇠서 하나를 둔…
장항리사지는 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에 위치한 토함산 동쪽에 있는 절터로,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마을의 이름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부른다. 금당 터를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이 있었으나, 도굴범에 의해 붕괴한 것을 1932년에 복원이 가능한 서탑만을 새로이 복원해 놓은…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豐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당시 풍악서당의 유생들은 난리 중에도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이에…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순국한 이홍인과 그의 후손 이한오의 충과 효가 얽혀있는 유서 깊은 집이다. 이홍인 공의 후손들이 사는 집으로서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정되며 ‘충효당’이라 부른다. 안채와 사랑채가 맞붙어…
체화정은 조선 후기 때 학자인 이민적이 1761년에 지은 정자이다. 정자 이름에서 체화는 상체지화의 줄인 말로 형제간의 우애와 화목을 의미하는데, 『시경』에서 그 의미를 따왔다고 한다. 이민적은 만년에 큰형 이민정과 함께 이곳에서 지내면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졌다. 온돌방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