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통합특별시] 봉조농촌체험학교
봉조농촌체험학교는 봉조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농촌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옛 봉조분교(초등학교)에 만든 농촌체험학습장이다. 고즈넉한 시골 학교에 정원과 뜰, 그리고 연못을 만들었고 교정 뒤편에는 대형 원두막이 있어 실외 수업이나 식사 장소로 활용하며 옛 교실의 원형을 그대로…
봉조농촌체험학교는 봉조마을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농촌과 자연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옛 봉조분교(초등학교)에 만든 농촌체험학습장이다. 고즈넉한 시골 학교에 정원과 뜰, 그리고 연못을 만들었고 교정 뒤편에는 대형 원두막이 있어 실외 수업이나 식사 장소로 활용하며 옛 교실의 원형을 그대로…
하저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국이 돼지머리형이어서 저두산이라 칭해졌으며, 마을의 명칭은 이 뒷산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저두산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서기 600년쯤에 이용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돛 머리이기도 하다. 하저마을은 이웃에 있는 상저, 중저 보다 아래에 위치하여…
구례 운조루 고택은 토지면의 여러 마을 중 오미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운조루는 큰 사랑채의 이름으로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건물은 본래 대구 사람인 류이주가 금환락지의 명당에 매료되어 은퇴하면 이곳에 머물 것을 결심하고 시작하여 7년이라는 세월…
좁고 물살이 거센 목포항 입구에 위치한 해남 목포구등대는 1908년 1월 1일 등대 불을 처음 밝혀 해남 화원반도와 목포 달리도 섬 사이의 좁은 수로를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목포항 입구인 해남군 매월리에 있지만 목포항 관문으로의 기능적인 면을…
정유재란 당시 왜적의 참화가 절정에 이른 9월 호남의 서남단 일대가 그들의 손아귀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등에 거주한 동래 정씨, 진주 정씨 두 문중의 아홉 부녀자들은 각기 남편들이 전사하거나 왜적에게 붙잡히자 화를 피해 현 위치인 묵방포 앞 칠산 앞바다에 몸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마치 큰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금오도라 부르며, 설화와 전설, 민요와 민속놀이 등이 다양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숲이 울창하고 특히 국할나무와 산삼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민간인의 입주를 금지시키고 사슴을 수렵하기도 했던 곳이다…
정수루는 나주에서 편찬된 여러 지지류에 ‘관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나주의 관아문이다. 정완루라고도 불리었다. 선조 36년(1603)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동계 우복용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1753년 5월 29일~1755년 2월 4일 재임)가…
명옥헌은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에 있는 조선시대 오희도가 살던 집의 원림이다. 조선 중기 오희도가 자연을 벗 삼아 살던 곳으로 그의 아들 오이정이 명옥헌을 짓고 건물 앞뒤에는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던 정원이다. 계곡 사이로 수량이 풍부했을 때 물이…
인근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서 힘껏 가르치거라 하는 중종의 하명을 받아 심광형은 일종의 영재학교를 세운다. 동악산을 등지고 섬진강과 마주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 군촌마을에 함허정과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를 세웠다. 1535년에 지어진 군지촌정사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보리암은 추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보리사라고도 불리며 고려 신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하였는데 스님이 지리산에 머물 때, 전국의 좋은 땅을 찾기 위해 나무로 세 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