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덕산서원(대구)
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遴)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이 서원은 조선조 대학자였던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 사월당 류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 모당의 6대 조인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네 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모당 손처눌의 자는 기도(幾道)이며, 한강(寒岡)…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1980년대 후반부터 시내 중심가의 대형식당들이 도심의 교통체증 주차난 등으로 들안길로 하나 둘 모여들어 먹거리타운을 형성하였으며, 지금은 대구의 대표적인 먹거리 타운으로 발돋움하면서 수성구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준 높은 요리와 독특한 인테리어, 넓은 주차장을 갖춘 식당 150여…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오천서원에 배향된 양희지는 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가행(可行), 호는 대봉(大峰)이다. 연산군 즉위 후 직제학과 부승지를 거쳐 1500년에 부총관을 거쳐 대사헌에…
2·28 기념중앙공원은 2·28 학생 민주의거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2003년 6월 조성되었으며, 면적은 14,354㎡이다. 1960년 일어난 2·28 학생 민주의거는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하여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 민주화운동으로 3·15 마산의거, 4·19 혁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