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봉산서원(대구)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遴)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遴)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이 서원은 조선조 대학자였던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 사월당 류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 모당의 6대 조인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네 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모당 손처눌의 자는 기도(幾道)이며, 한강(寒岡)…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1980년대 후반부터 시내 중심가의 대형식당들이 도심의 교통체증 주차난 등으로 들안길로 하나 둘 모여들어 먹거리타운을 형성하였으며, 지금은 대구의 대표적인 먹거리 타운으로 발돋움하면서 수성구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준 높은 요리와 독특한 인테리어, 넓은 주차장을 갖춘 식당 150여…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오천서원에 배향된 양희지는 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가행(可行), 호는 대봉(大峰)이다. 연산군 즉위 후 직제학과 부승지를 거쳐 1500년에 부총관을 거쳐 대사헌에…
2·28 기념중앙공원은 2·28 학생 민주의거를 기념하여 만든 공원이다. 2003년 6월 조성되었으며, 면적은 14,354㎡이다. 1960년 일어난 2·28 학생 민주의거는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하여 대구에서 일어난 학생 민주화운동으로 3·15 마산의거, 4·19 혁명으로…
대구 오토바이 골목은 1950년부터 조성되어 70여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대구 특화 골목이다. 대구 중구 인교동과 시장북로에 위치한 오토바이 골목은 본래 하천이었으며, 양쪽이 대부분 주택지였다. 1953년 복개천이 된 인교동에 1961년 서울오토바이상회를 시작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대구 중구 동산동 청라언덕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서양식 2층 건물로 191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의료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긴 네모형으로 1층 내부에는 거실·서재·부엌·식당·계단 등이 있고, 2층에는 2개의 침실이 있다. 외부에는 나무로 된 현관과…